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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날에 차린 나의 간단한 나물 밥상

 

보름날인 줄을 아침에서야 알게 되어

집안에 있던 건조 취나물과 시래기 등, 있는 식재료를 가지고

부지런히 오곡밥과 나물 세가지를 만들었다.



매년 정월대보름날에는 최소한으로 보름 맞이 준비를 하면서 지냈었는데..

올해는 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그냥 정신줄을 놓고 살다 보니 챙기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작년에 건 취나물을 농장에서 구입한 것을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제일 먼저 이 건취나물을 물에 다시 불려서 삶았다.

취나물도 친환경으로 직접 하우스에서 농사를 짓는 곳이 있다보니

오히려 농약살포 없이 키운 것이라고

생취나물을 믿고 구매해서 먹는데 건 나물도 판매를 하는 것이라서

처음으로 한 봉지를 사놓았던 것이었다.

 


묵은 취나물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먹는 것이라 양념에 조금 신경을 쓴다고 

잣을 넣어 무칠 양념준비로 해 보았다.

이 묵나물양념으로는

집간장, 볶은 소금 약간, 깨소금, 통깨, 대파, 잣 다진 것, 멸치액젓 한술, 들기름 넉넉하게 넣고 

모든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쳤다.

나물은 역시 손으로 골고루 무쳐야 

간이 골고루 배여서 그런지... 제 맛이 난다.

 


왠지 이 묵나물은

보름날에 안 먹으면 안 될 것 만 같은 음식처럼 늘 매년 만들어 먹는데도 

그 나물 맛은 약간씩 다르니... 이제 내 솜씨도 미각이 퇴화됨을 느낀 탓인지

맛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 같다.ㅎㅎ

 


이번에 나물 간을 맞출 때는 집간장과 소금으로 맞추었는데

나물 맛이 없어서 멸치 액젓을 약간만 넣었더니 맛이 확 달라졌다.

역시 나물은 양념 맛으로 먹기도 한다고 하는데...

3년 된 묵은 멸치 액젓의 뛰어난 맛이 깊다.


식구수가 적으니 많이 하지 않고 한 접시씩만 한다고 해도

내 손이 커서 넉넉히 무친 결과 나물이 많으니 

내일은 비빔밥을 만들어야겠다.

 


이 묵나물로 취나물을 무친다음에 

곱창김도 발라 놓고 

시래기나물도 삶아서 껍질을 모두 벗겨서 무쳐놓으니

시래기가 부드럽다.

섬초가 있어서 섬초 나물도 해 놓고 보니 

빠진 나물이 더 많다.

호박 말린 호박곶이와  

고사리 나물이 빠져서 허전한 오늘의 보름날 밥상이었다.


 

오늘이 보름날이라고 하여 근근하게 차린 밥상이었다.

갑작스레 보름맞이 나물 준비 없이 있는 것만 가지고  아주 간단히 차려서

찰밥과 함께   반찬으로 한 끼 잘 먹었다.

나물 밥상을 차려서 먹으니까 좋지만...

옆지기는 아주 나물을 싫어하니

냉이된장국에 김만 먹는 것을 보며 

마주하여 밥을 먹으니

내 눈 앞에 서 보이는 옆지기의 식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오곡찰밥에

김에 나물을 얹어서 싸서 먹는 것도 제 맛이 좋았다.

 


찰밥을 김에 싸서 먹으면

아주 오래전에 밴쿠버에서 살 때의 이웃 한국 엄마가 생각이 난다.

아들과 같은 학년이라고 처음으로 캐나다 학교 실정을 잘 모르던 나는 

그 부모님으로부터 정보를 알게 되어 주말이면 함께 이웃하면서 지내던 때였다.

함께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는데

나는 김밥 도시락을  싸 갔었고 

함께 간 어머니는 찰밥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왔던 것을 보고 놀라웠다.

그 당시에 나는 늘 김밥을 자주 쌌지만, 간단히 찰밥을 해서 뭉쳐 온

그 어머니가 왠지 성의 없이 점심을 싸온 것처럼 보였기에

비교되었던 느낌이랄까?

남의 떡이 커 보이듯이 함께 간 남매들의 김밥만을 먹는 것을 보고 

역시 늘 먹는 엄마 음식보다는 이웃집 밥이 더 맛나 보이는 법이라

두 가족이 둘러앉아 야외에서 먹는 점심식사가 즐거운 추억으로 있으니 

찰밥을 만들면서 그때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김밥 싸는 것을 번거로워해도 아들에게 줄 생각으로 정성껏 만드는데...

이웃 엄마의 네 식구가 먹을 점심 도시락을 보고 가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정말로 너무나 성의 가없어 보였던 그 가족의 야외 도시락을

처음으로 이민을 가서 본 것이다.

찰밥도 그냥 짭 쌀에 달랑 콩 하나 넣어서 만든 밥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엘리트들이라고 생각하는

이대를 나온 출신의 엄마라고 알고 있었던 나였기에  더 놀라웠었다.

처음으로 이웃을 알아가던 때에 알게 된 이웃 학부모로서 

풍기는 지적 수준을 내 나름대로 상대방을 파악해 갈 때쯤이었으니까

그렇게 일거 일투족에  내심으로 혼자 판다를 해 가던 때...ㅎㅎ

아주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 일상에서 풍겨져 나오는 품위를 너무나 기대하였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자식으로 인해서

 이국 땅에서 맺어진 같은 또래의 같은 학교 동기로 알게 된 인맥이었다.

일상의 먹거리를 나도 오늘 대충 하다 보니  그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살다 보면 밥 상차 린다는 것이 귀찮을 때가 종종 있어서 대충 먹게 되는 때...

오늘의 이 보름 밥상이 나로서는 정성을 들여서 만들지만,

보름날에 준비해야 할 다양한 먹거리들을 하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재료만을 가지고 만들어 먹은  대충 차린 보름날의 밥상이었다.

그야말로 보름 밥상이라고 말하기엔 뭔가가 많이 부족한 밥상이었다.

그렇지만, 

보름이라고 생각을 하고 차린 밥상인만큼 

예전에 차려먹었던 보름날의 상차림을 많이 떠올리기도 하면서...

지나치지 않은 보름날이었음을...

 


저녁에 보름달을 보면서

쥐불놀이로 일 년 소원을 빌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난다.

쥐불놀이에 온 동네 아이들이 무심천  둑 빵으로 올라가서 

쥐불놀이를  하던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 아득하다.

벌써 55년 전의 깡통 하나 주워서 송곳으로 구멍을 뚫으며 깡통에 줄을 매달아 캉통안에 

불씨를 넣고 돌려가며 쥐불놀이를 하던 동네 또래들과 어울려

한바탕 놀던 그 때를  그려보기도 한다.ㅎㅎ

 

보름날도 어린시절이 더 재밌었던 것을.....